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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백남준과의 우주적 대화

이은미/미드웨스트대 TESOL 교수

예고해 드린 바와 같이, 지난 일요일에 국립미술관의 타워 전시실에서 백남준의 특별전이 시작되었다. 이번 전시회에는 중앙 홀에 세 가지 비디오 아트 작품이 설치되었고, 부속 전시장에 달마도를 주제로 전등을 삽입한 작품과 그의 작업 아이디어를 스케치한 듯한 평면적 회화 소품들이 걸렸으며, 백씨의 일대기 다큐멘터리 영상이 쉼 없이 흘러가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우리를 강하게 사로잡는 것은 One Candle(하나의 촛불, 1988~2005), 한 손을 내밀고 서있는 부처상(2005), 그리고 Three Eggs(세 개의 알, 1975~1982). 이 세 작품은 주제 면에서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촛불이 연약하게 흔들리고 있을 때, 실내에 설치된 프로젝터들을 통해 반사되는 각기 다른 크기와 색상의 불꽃들도 흔들린다. 이는 얼핏 ‘초의 불꽃’을 논한 ‘바실라르’를 떠올리게 한다. 혹은 벽에서 흔들리는 아름다운 불꽃들에 취하여 본래의 불꽃의 존재를 잊고 마는 나는 마치도 플라톤이 ‘동굴의 우화’에서 논한, 그림자를 실체라고 믿고 있는 사람과도 같다. 우리는 허상에 취하여 본질로 눈길조차 보내지 못할 수도 있다.

촛불도, 초의 그림자도 외면한 듯, 부처는 벽 쪽을 향해 서 있다. 부처 앞에 포개져 있는 네 대의 텔레비전에 부처의 모습이 비쳐지고, 빙빙 돌아가는 세상이 비쳐지기도 한다. 부처 등에 낙서처럼 백남준이라고 한자로 한글로 휘갈긴 서명은 스스로를 부처로 만들어버리는 백남준의 익살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1975년에 아이디어를 처음 냈다는 ‘세 개의 알’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여러 가지 상념에 빠지게 된다. 지난 3월 9일자 중앙일보에 ‘요한복음 강해’를 새로 발간한 김흥호 목사의 이야기가 실렸었다. 김씨는 “예수라는 계란이 그리스도라는 병아리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하나의 알을 영원히 지켜보는 저 비디오카메라와 조명등은 구원자의 기다림인가? 혹은 해탈의 기원인가? 만약에 정말로 하나의 유정란에 적당한 조명을 보내면서 지속적으로 촬영을 한다면 그 알은 깨어나지 않을까?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구원자의 탄생인가, 혹은 불교적 관점에서의 해탈인가 하는 종교적 논의는 접어두고라도 이 세 개의 알 작품은 들여다볼수록 신비롭기만 하다.

평범해 보이는 달마도에 손도장을 꾹 찍고 그 손 자리에 전등을 설치해 놓은 그의 작품은 선사시대의 인류가 동굴벽화 속에 남겨 놓은 무수한 손자국의 하나처럼 보인다. 액자에 낙서처럼 담긴 그의 평면적 회화 작품들도 들여다볼수록 놀라운 영감으로 가득 차 있다.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고등학생 아들과 나누는데 아들이 묻는다. “엄마가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것들을 작가가 의도한 것일까요? 엄마의 자의적인 해석이 아닌가요?” 관객이 작가가 의도하지도 않은 것을 멋대로 침소봉대로 해석하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닌가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말해줬다. “예술작품은, 그것이 미술이건 문학이건 음악이건, 작품이 작가의 품을 떠나 관객에게 갔을 때 ‘감상자’와 함께 호흡하며 새로운 생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의도를 들여다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나의 시각으로 작품을 발견하는 것 역시 새로운 창조 작업과 같은 것이다.”

백남준씨의 비디오 아트를 감상하실 때 특히 두 가지를 유념하시면 예술과 담을 쌓고 사는 분들도 유쾌해 질 수 있다. 첫째, 작품의 ‘현재성 (here and now)’이다. 모든 것은 ‘현재 진행 중’인 것이다. 둘째, 관객이 작품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참여성’이다. 서있는 부처 작품 속에 내가 들어갈 수 있다.

백남준씨의 비디오아트는 벽에 걸린 정지된 그림들과는 달리, 지금 현재 일어나는 ‘현상’이고, 내가 그 ‘현상’을 비틀거나 변형을 가할 수도 있다. 관객 역시 생산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정말로? 서있는 부처 뒤에 가서 확인해 보시길. 그의 작품 속에선 우리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촛불은 끄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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