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실수열전
채수호/자유기고가
폴리에스터 재질에 구슬장식이 잔뜩 달려있고 와인 얼룩이 여기 저기 묻어있기에 물 세탁을 하기로 하고 드레스를 그물 백에 담아 세탁기에 넣고 손빨래 모드로 돌렸다. 구슬장식이 신경이 쓰여 건조할 때도 온도를 저온으로 맞추고 오랫동안 말렸다. 세탁과 건조가 끝난 후 걸어놓고 보니 와인 얼룩도 말끔히 빠졌을 뿐 아니라 흰색이 눈부실 정도로 살아나고 구슬장식 또한 말짱했다.
이렇게 두 벌을 연거푸 빨고 나서 마지막 한 벌도 같은 방식으로 세탁했는데 건조기에서 꺼낼 때 왠지 촉감이 좀 이상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뻣뻣하고 주름이 심하고 크기가 많이 줄어있는 것이 아닌가.
화들짝 놀라 다시 ‘케어 레이블’을 보았더니 '100% Silk, 드라이크리닝 온리'로 돼 있었다. 아뿔싸, 실크 웨딩드레스를 물로 빨다니. 다른 두 벌의 드레스가 폴리에스터 재질이고 촉감이 비슷하기 때문에 그것도 폴리에스터로 착각했던 것이다.
'아이쿠 죽었구나.' 갑자기 눈앞이 노래지고 입 속이 바짝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을 어찌하랴. 나는 줄어든 크기만이라도 좀 늘려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웨딩드레스 자락을 두 손으로 잡고 양 옆으로, 아래 위로 힘껏 잡아 당겨 보았다. 그랬더니 실크 천이 트면서 자글자글 수도 없이 많은 줄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줄어든 데다 트기까지 하다니.
다른 것도 아니고 갓 결혼한 젊은 부부가 평생을 추억으로 간직해야 할 소중한 웨딩드레스를 망쳐 놓았으니 이 일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손님한테 말하지 않고 그대로 다려서 박스 속에 넣어두면 아마도 오랫동안, 어쩌면 평생 다시 열어보지 않을지도 몰라' 하는 음흉한 유혹이 마음속에서 똬리를 틀었으나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똑같은 모양의 드레스를 사주기로 하고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다. 그러나 그 드레스는 디자이너 브랜드라서 같은 모양의 드레스는 찾을 수 없었다. 하는 수없이 드레스를 들고 우드브릿지몰과 쇼트힐몰 등지를 돌아다녀 보았으나 같은 드레스는 아무 데도 없었다.
걱정 속에 일주일이 흘렀다. 나는 고객이 드레스를 찾으러 올 때까지 기다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저녁때 고객의 집으로 찾아갔다. 갑자기 집으로 찾아온 세탁소 주인을 보고 의아해 하는 고객에게 나는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말을 꺼냈다.
"드, 드레스를 망쳐 놓았습니다. 모두 제 잘못이므로 끝까지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내 말을 듣고 있던 고객은 가게로 드레스를 보러 갈 것이니 그 때가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다음날 고객 부부가 찾아와 다림질 해 걸어놓은 드레스를 보더니 "많이 망가졌네요. 어떻게 하시겠어요?""제가 돈을 드릴 터이니 똑같은 드레스를 한 벌 사십시오.""똑같은 드레스는 있지 않아요. 가격도 5000달러가 넘는걸요.""그럼 제가 5000달러를 물어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은 작은 소리로 무언가 서로 상의하더니 어쩔 줄 모르고 서있는 내게 말하였다. "200달러만 물어주세요. 현금은 필요 없고 크레딧으로 주시면 되요."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2000달러도 아니고 200달러이라니. 그것도 크레딧으로….
"이 드레스는 결혼식 때 이미 입은 옷입니다. 드레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념이 되기에는 충분하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상황을 솔직히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어서 200달러 크레딧 메모를 써주세요."
망가진 드레스를 들고 아무 일 없었던 듯 가게 문을 나서는 젊은 부부에게서 나는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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