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산책] 현빈…보름간의 꿈
신복례/편집부 차장
그렇다. 이 아줌마 '현빈앓이' 중이다. 대한민국 30~40대 여심을 뒤흔들고 있는 SBS 드라마 '시크릿가든'에 나오는 그 남자 현빈의 미소 한방에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질 정도로 중병에 걸렸다. 좀 심하기는 했다. 늦은 밤 깍~하는 마누라 외침에 깜짝 놀란 남편이 "왜 그래 왜 그래?" 다급히 묻는데 "저 미소 저 미소 자기야 나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 이런 대사를 날리고 있으니.
사실 나도 놀랐다. 드라마 뜰 때마다 뭔 폐인 누구 앓이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 나이에 더구나 평소 드라마를 자주 보지도 않는 사람인데 이런 시한부 난치병이 찾아올 줄이야.
그런데 나쁘지 않다. 얼마만에 다시 맛보는 연애 사돈의 팔촌쯤 되는 감정인가. 그저 바라만봐도 기분 좋고 설레는 이 느낌. 불현듯 순간이동을 해 20대 풋풋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도 빠져본다.
그러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일본의 한류팬 아줌마들이 배용준 이병헌 류시원을 보겠다며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한국 곳곳의 드라마 촬영지를 찾아다니며 한땀한땀 '그 남자들'의 자취를 어루만지는 심정을. 세월에 깎이고 삶의 무게를 지탱하느라 잊고 살았던 오래전 유효기간이 끝나 폐기처분한 것으로 알고 있었던 연애감정의 불씨에 바로 '그 남자들'이 기름을 들이부었던 것이다. 심드렁하고 재미없던 삶이 갑자기 긴장되고 설레고 사랑스러워졌으니 현해탄 아니라 그 어딘들 건너고 싶지 않았을까.
남편을 상대로 현빈이 했던 대사를 흉내내며 혼자서 즐기기 며칠째 남편의 반격은 참으로 현실적이었다. 바쁘니 대신 마켓에 가서 장 봐가지고 저녁을 준비해달라는 부탁에 대뜸 돌아온 답변은 "현빈한테 해달라지 왜?" 아~깬다.
그래 그림 속 산해진미가 아무리 맛있어 보인다 한들 내 손안의 떡만 할까. 웃었다. 그러나 잊고 싶지 않다. 이 마음 기분 좋고 설레는 마음 무장해제 당한 듯 포근하고 따뜻해지던 그 느낌 그 기분으로 올 한해를 지내고 싶다. 첫마음이라고 했던가. 조심스럽고 살짝 부끄럽고 잘해보고 싶고 그래서 온 정성을 다하는 그런 마음자세로 내 주변의 살아있는 것들을 대하고 싶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가 그의 단편소설 제목을 통해 던진 질문이다. 답은 사랑이다. 열정적이고 낭만적이고 감정에 한껏 달떠 내 손안에 쥐어야만 내 것인 줄 알던 그런 배타적인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기에 친밀감을 느끼며 친절한 마음으로 대하는 그런 사랑 말이다.
20대때 즐겨 불렀던 노래가 있다. 녹색지대의 '사랑을 할거야' 라는 노래였다. "모든 것을 주는 그런 사랑을 해봐. 받으려고만하는 그런 사랑말고. 너도 알고 있잖아 끝이 없는 걸. 서로 참아야만 하는 걸. 사랑을 할거야 사랑을 할거야……"
그래 현빈 덕분에 올해 나의 화두는 정해졌다. 사랑이다. 좀 더 실현가능하게 표현하자면 친절함 타인에 대한 배려 측은지심이라고할까. 그렇게 결심한 뒤 처음 눈에 들어온 뉴스는 구제역이었다. 한국을 휩쓸고 있는 구제역으로 그동안 살처분당한 소와 돼지가 100만마리를 넘어섰다고 한다. 안락사에 필요한 약물이 동이 나 10만여마리의 돼지들은 생매장을 당했다고 한다. 아프다. 두 손 모아 비명을 지르며 목숨을 다한 소와 돼지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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