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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판옵티콘’에 갇힌 현대인

한 중년 남성이 정신과 병원을 찾았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활기찬 사업가였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사업을 접었다.사업을 정리하던 날, 그는 건물주와 임차 기간 문제로 심한 다툼을 했고 압박도 받았다.

그 후 그는 건물주에게 매일 감시를 당하는 것 같고, 그 건물 속에 갇혀있다는 정신적 불안감을 겪고 있다.

육체적 학대, 경제적 피해, 정신적 충격 등을 당한 사람은 가해자로부터 자신이 늘 감시를 받는다는 피해 망상증을 갖게 된다. 이를 의학에서는 ‘망상장애(Delusional Disorder)’라고 한다.

곳곳에 설치된 CCTV, 자동차에 부착된 블랙박스, 손마다 들려있는 휴대폰 카메라,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나는 경찰차 등에 둘러싸여 현대인은 어디를 가든 자신도 모르게 감시를 당하며 살고 있다.

사방에서 오는 감시로부터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울타리 벽은 점점 높아만 간다. 아파트도 더 높은 층을 선호한다.

현대인들이 왜 해변에서 휴식을 즐기는가? 탁 트인 공간, 벽이 없는 바다는 인간에게 멀리 수평선 너머까지 시각적 자유를 제공하고, 감시 환경에서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원형 교도소’를 영어로 ‘판옵티콘(Panopticon)’이라 한다. Pan은 ‘모두’, opticon은 ‘본다’라는 그리스어의 어원에서 따 왔다. 두 단어가 합쳐져 ‘모두를 볼 수 있다’는 뜻으로 원형 교도소가 됐다.

영국의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은 최소의 비용으로 많은 노동자들을 감시, 통제할 수 있는 공장 건물을 설계하던 중, 원형 감옥을 고안하게 됐다.

그가 고안한 감옥은 원형의 둥근 건물 각 층에 여러 개의 방을 만들어 죄수들을 배치한 후, 각 방을 최대한 밝게 한다.

반면 간수는 둥근 건물 중심의 타워 꼭대기에 위치하고, 조명은 최대로 어둡게 한다. 그러면 죄수들은 간수가 있는지 없는지 분별이 불가능하고, 타워의 간수는 아래의 수 많은 죄수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원리로 판옵티콘은 설계됐다.

원형 교도소의 효과는 죄수들의 시선을 내면화해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게끔 하는 위력이 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저술한 책 ‘감시와 처벌’엔 “현대사회는 감시자가 있든 없든, 판옵티콘의 감시효과가 인간 삶에 고통을 준다”라고 지적했다. 특정 감시자에 의해 진짜로 감시 당하는 게 아니라, 판옵티콘의 감시효과에 의해 자유를 침해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항시 감시를 당하며 산다는 것은 고통이다. 고통의 정도가 심하면 망상장애 치료를 받아야 한다.

과거엔 사람이 직접 타워에서 죄수를 감시했다. 죄수가 증가하자 간수를 대신해 ‘감시 미디어’를 창안해 간접 감시를 하고 있다. 소위 ‘정보 판옵티콘(CCTV)’이다.

정보 판옵티콘은 교도소뿐만 아니라, 지구상 모든 공간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분산돼 감시를 하고 있다. CCTV는 범죄 예방과 증거 확보가 목적이지만 감시에도 사용된다. 결국은 범죄가 감시를 불러 온 것이다.

감시는 거짓, 악행, 살인, 범죄자들에겐 불안과 고통을 준다. 하지만 선행과 정의,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을 보는 눈은 감동과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성경 잠언 기자는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보영 / 전 한진해운 미주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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