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가을 열매
싸늘한 이 아침 "나를 먹어주세요." 가을의 빨간 열매들은 새들의 주목을 받기 위함이란다. 크지 않은 작은 열매들은 봄 여름 동안 아무에게도 주목 받지 못하고 푸른 잎 속에서 있는지 조차도 관심이 없었지만 이들은 오늘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다. 이들은 상큼하고 단단하게 보인다. 맛 있게 보인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코 앞에서 기다린다. 그 푸르던 나뭇잎들은 서둘러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다음 해를 기약하고 떠나며 여름 동안 절대자로부터 받은 생명을 남겨서 이웃들에게 겨울 동안 필요한 먹이를 남겼다. 잎이 떨어지는 가지마다 붉은 열매가 탐스럽다.흔히 사람들은 말한다. 봄에는 새싹을, 여름에는 넓은 잎을, 가을에는 열매를, 겨울에는 뿌리를 먹는다고 말한다. 봄 여름 동안 식물들은 땅으로부터 영양을 받아 그들의 임무인 살아서 후세를 남기기 위해서 쉬지 않고 해바라기를 한다. 때가 되면 향기와 색깔로 자신의 존재를 벌과 나비에게 알리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가을이 되면 열심히 노력한 만큼 각자가 붉은 열매를 자랑한다. 산이나 공원에 나가면 찔레나무, 홀리 트리, 꽃 사과, 보라색 열매가 아름다운 작살나무, 껍질에 키니네 성분이 있다는 산딸나무, 산수유 등등 이름도 모르는 수 없이 많은 나무에 빨간 열매가 무겁게 달려 있다.
새들에게는 잘 차려진 잔칫상이다. 여름 동안 가지를 찾아 다니며 노래 불러 주며 즐겁게 만들어 준 보람이 있다. 해마다 이 때가 되면 도토리는 삼태기로 쓸어 오고 싶은 만큼 널려 있어서 경사진 곳에서는 미끄럼을 탈 정도이다. 너무 많아서인지 다람쥐도 지금은 도토리를 돌아보지 않는 것 같다. 그들에게는 여름 동안 초대받지 않았지만 집집마다 다니며 맛있는 복숭아, 배와 같은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으니까.
나무들은 여름 동안 뜨거운 태양도 심술스런 태풍에도 소리 없이 한 자리에서 참고 견디어 왔다. 어떤 나무는 봄 여름 동안 아무도 관심도 두지 않고 어쩌면 한 번 눈길도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가을이 오면 이런 자랑스런 열매를 맺기 위해서 뜨거운 여름 동안 태양을 향해서 치열한 노력을 하여 생명을 유지한다. 그리하여 지구의 다른 생물을 먹여 살린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인가. 가을의 결실인 이 작은 씨앗은 그들의 생명과도 같다. 새들이 먹고 분비물로 떨어지는 장소가 다시 태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로가 공존하여 후손을 남기기 위해서 식물들은 다른 생명체가 살 수 있도록 꽃.열매.뿌리 등 모든 것을 제공한다. 가을 열매는 참으로 대견스럽다. 장석주 시인의 너무도 유명한 '대추 한 알' 시를 오랜만에 여기 적어 보겠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이 가을 아침 나도 속이 달고 단단한 알맹이를 만들어 놓았는지 생각하게 하는 순간이다. 두려워 진다. 나무처럼 나도 다음 해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좋겠다.
김동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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