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 역사 칼럼] 겉만 번지르르한 도금 시대
한 가지 금속 표면에 다른 금속의 얇은 막을 입히는 것을 도금이라고 한다. 대개 바탕 금속이 변질되는 것을 막거나, 겉껍질이 광택이 나도록 보기 좋게 하기 위해서 도금을 한다. 주로 금박을 입혀 도금하기에 도금을 영어로는 Gild라고 말한다. 금을 씌웠다는 뜻이다. 아무리 보기에 흉한 물체도 금박을 입히면 번쩍번쩍 화려하게 빛난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찬란하고 고상한 한 꺼풀의 금박을 벗기면 속에는 별 볼 일 없는 물질이 들어 있을 수도 있다는 말도 되겠다. 미국의 역사에서 겉은 화려하고 멋지나 그 속은 그렇지 못한 시대가 있었다. 소위 말하는 ‘도금 시대’이다. 영어로는 ‘Gilded Age’라고 한다.도금 시대는 1868에서 1890년대에 걸친 시기를 이르는 말이다. 마크 트웨인이라는 작가가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쓴 소설인 ‘The Gilded Age: A Tale of Today’라는 작품 이름에서 따온 말이다. 1868년은 그랜트 장군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던 때이다.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 주위 사람들이 부정부패를 일삼으며 타락하기 시작한 시대를 상징적으로 도금 시대라고 부른다. 마크 트웨인도 겉과 속이 달라도 너무 다른 사회상을 고발하기 위해 부패 타락한 미국 사회를 풍자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
남북전쟁 직후에 급속도로 펼쳐지는 산업화의 부작용으로 생긴 것이 바로 도금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주로 철도 건설을 둘러싸고 생겼던 정경유착의 관행이 생겼다. 탐욕과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한 시기였다. 거대 기업들이 주로 독점을 통해 모은 돈으로 재력과 권력을 휘두르며 더욱 끝 모를 탐욕을 향해 달려갔다. 철도 산업, 석유 산업, 강철 산업 등에서 독점이 횡행했다. 독점을 이루려면 정부의 비호를 받아야 했다. 정부의 비호를 받으려면 고위 공무원을 매수해야 했다. 공무원들과 국회의원은 기업이 주는 떡고물을 받아먹고 기업에 특혜를 주었다. 이런 식으로 부정부패가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정부는 철도회사에 철로 주변의 32마일의 땅을 거저 주기도 했다. 또한, 노동 쟁의로 파업이 발생하면 정부가 나서서 진압해 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서민들의 삶은 팍팍해져만 갔다. 그야말로 소수의 상위에 속하는 사람들이 미국의 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철도 산업의 발달에 덩달아 철강 산업도 발달했다. 때마침 석유 산업도 흥성하기 시작했다. 철도 산업에서는 밴더빌트, 스탠퍼드와 같은 거부들이 나타나고, 철강 산업에서는 카네기, 석유산업에서는 록펠러와 같은 독점 사업의 거부들이 재력을 자랑하기 시작해다. 일부에서는 이들을 ‘날강도 귀족’이라고 풍자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탐욕스러운 기업가 도둑들이라는 얘기가 되겠다.
도금 시대에 가장 피해를 본 사람들은 원주민들이었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미개 문명을 개화시키기 위해 서부를 개척했다”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을 정도였다. 미국이 개척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탈을 쓰고 서부 개척으로 몰려 갈 때, 이런 개척의 폭풍에 수많은 인디언이 바람 속에 사라져 갔다. 개발과 개척에 몰입해 있는 사람들에게는 미개한 인디언 사회는 개척의 큰 걸림돌에 불과했으므로 없애야 하는 존재였을 뿐이다. 그들에게는 인도주의라는 단어는 사치에 불과했을 것이다.
물론 도금 시대에 해당하는 상황은 어느 사회에서나 생길 수가 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나타나기도 했다. 21세기인 지금의 미국 사회도 도금 시대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IT 산업의 발달, 주식 시장의 활황, 거대 기업의 독점으로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이 더 뚜렷해지고 있는 데다가 부자들을 위해 세금 제도를 바꾸는 정치 때문에 빈부의 격차는 점점 심해지고 있는 것을 보고 이르는 말이다. 빈부의 격차가 지극히 심해지면 소외계층이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파괴적인 혁명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런 파국은 없어야 한다. 현재 미국 사회에 던져진 과제는 겉만 번쩍거리는 도금의 사회가 아니라 속도 알차고 여유로운 사회를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엄정히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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