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포럼] 시진핑, 무슨 말을 했기에
채 인 택 / 한국 중앙일보 논설위원
백양의 말대로 명나라는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파병했다가 재정난에 봉착하고 급기야 이자성의 난으로 왕조가 무너지고 결국 만주족에게 점령된 게 사실이다. 만주족의 청나라는 1840~1842년과 1856~1860년 두 차례에 걸친 아편전쟁에서 패배해 서구 세력의 침탈을 당하다 1895년 청일전쟁으로 결정적 타격을 입고 자존심에 상처까지 입었다. 대부분의 중국인은 최근 경제성장과 군사력 증강이 이때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인식한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실 국제정치학적 시각으로 보면 명나라와 청나라의 파병은 선의라고 보기는 어렵다. 실상은 중국이 역사적으로 한반도를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로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1950년 6.25전쟁을 일으킨 북한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존폐 위기에 처하자 건국한 지 1년 남짓된 중화인민공화국이 한반도에 파병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신생 중국이 자신과 맞서는 국가나 세력과 국경을 맞대지 않으려고 무리하게 군대를 보냈다는 이야기다. 중국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자국의 핵심이익이라며 현상유지를 줄곧 강조해온 것도 같은 선상일 것이다.
여기서 나온 '코리아'기 한반도인지 대한민국인지, 북한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에 따라 트럼프가 말한 코리아가 북한을 의미할 수도 있다. 시 주석이 중국과 북한의 혈맹관계를 설명했을 경우 가능한 일이다.
북.중 관계의 어려움을 시 주석이 이야기했을 수도 있다. 1956년 북한 노동당에서 중국 출신의 연안파가 소련파가 손을 잡고 김일성을 당 위원장직에서 몰아내려고 시도한 8월 종파사건 이후 연안파는 모조리 숙청되고 북한 정권은 중국과 긴장 관계에 들어갔다. 이후 김일성은 죽을 때까지 외상과 주중대사에 친중파를 일절 기용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이를 거론하며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실제로는 크지 않다는 사실을 트럼프에게 이야기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현대 중국의 카리스마적 지도자인 시 주석이 트럼프에게 '한반도가 중국의 일부였다'는 식으로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고 발언했을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통역 과정에서 내용을 단순화하는 실수가 있었을 수도 있고,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식견이 부족한 트럼프가 시 주석의 발언을 뭉뚱거려 자기 방식대로 곡해했을 가능성도 커 보인다.
중국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중국과 싸울 때가 아니다. 북한의 핵무기와 대륙간탄도탄(ICBM)의 완성이 가져올 안보 위기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다. 일단 중국과 미국은 북한의 도발이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 안보를 위협한다는 데 사실상 인식을 함께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군사력과 외교력을 최대한 활용해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 몰두할 때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 위기에 대한 명확한 해법을 내놓는 대신 '주적' '개성공단' '햇볕정책 공과' 등을 거론하는 데 시간을 보내는 대선 후보들이 한가해 보인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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