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정 칼럼] 인연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서 외숙모는 가까운 사이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평생에 몇 번, 집안의 큰일이 있을 때나 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게 되는 것은 혈연으로만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게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외숙모가 미국에서 살면서 많이 보고 싶은 사람 중의 하나이다.어릴 적 기억이지만 아직 추운 초봄이었다. 나중에 보니 막 여섯 살이 되던 해였다. 엄마는 보통 때와 달리 미장원에 다녀왔고 예쁜 한복을 입었다. 내게는 춥다고 좀처럼 입혀주지 않던 치마를 입혀주었다. 영문도 모르고 엄마 손에 이끌려 간 그곳에서 선녀의 날개 같은 하얀 옷을 입은 아주 예쁜 여자를 보게 되었다. 나는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다. 나무꾼 이야기에 나오는 선녀일까. 아니면 어른들 따라가 보던 영화에서 나오는 영화배우를 직접 만나게 된 것일까. 나는 어렸고, 바쁜 어른들은 내게 설명해주지 않아서 그곳이 결혼식을 하는 예식장인 줄 몰랐던 것이다. 입은 드레스만큼이나 하얀 피부에 새까만 눈썹과 크고 예쁜 눈을 가진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한참 후에야 누군가가 외삼촌의 색시라고 말해줬지만 믿기 어려웠다. ‘저렇게 예쁜 사람이 외삼촌의 색시라니. 이제 자주 볼 수 있다니.’ 마음이 설레었다. 외숙모와는 만남부터가 그렇게 극적이었다.
외갓집과 우리 집은 골목 몇 개를 지나면 될 정도로 가까이 살았다. 외가의 첫 손녀인 나는 3살 터울의 동생이 있는 우리 집보다 관심과 사랑이 쏟아지는 외가에서 살다시피 했다. 외삼촌도 첫 조카인 나를 특별하게 대했고 나도 외삼촌을 따랐다. 외삼촌은 됨됨이는 물론이고 키가 크고 잘 생겨서 외할머니의 자랑거리였다. 어린 내게도 외삼촌은 멋있었다. 그런 멋진 외삼촌의 사랑을 받던 나는 예쁜 외숙모랑 셋이서 다 함께 자고 싶어, 신혼부부 방에서 자기도 여러 번 했다. 어른들이 그때 왜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민망하다.
어린 내 눈에는 천사처럼 예뻤던 외숙모는 외모만이 아니라 마음씨도 고왔다. 집안의 대소간 일을 희생적으로 감당하심은 물론이고, 알뜰하고 솜씨가 좋으시며 속이 깊고 넓으셨다. 큰 시누이인 우리 집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도 말없이 진심으로 도움이 되어 주셨다. 언제나 변함없었던 외숙모의 따뜻함으로 인해 우리는 핏줄처럼, 우정처럼 진하게 맺어졌다. 새삼스럽고 멋쩍기도 해서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살지만 외숙모는 늘 마음 속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평생 선한 마음으로 베풀며 사신 덕분인지 자손들이 모두 성공해서 잘 살고 있다. 이제 팔십이 가까워서 곱던 피부와 자태도 많이 사라졌지만 그 고운 마음씨와 부지런하고 점잖으심은 누구에게나 귀감이 될 만하다.
외숙모와 마주하면 저절로 외삼촌 생각이 나지만 외삼촌의 이야기는 서로 하지 않는다. 늠름하고 건강하던 사람도 병 앞에서 얼마나 힘없이 무너지는지를 다시 기억하는 것조차 마음 아프고, 갑작스런 가족의 죽음이 남은 가족에게 얼마나 오래도록 큰 상처로 남았을지 알기 때문이다. 외숙모는 마음이 곱고 여린데다가 워낙 남편에게 극진했던 분이라, 환갑 나이였던 남편을 갑작스럽게 떠나보내고 매우 힘드셨을 것이다.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의연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진정한 외유내강을 배우게 된다.
가끔 외숙모는 내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다. 그 어린아이가 벌써 머리에 흰서리가 내려앉았음에도 말이다. 세월은 참 빠르다. 이제 신혼 방을 침입하던 그 어린아이는 외숙모와 흉금을 터놓고 삶을 이야기 한다. 얼마 전 만남에서도 내가 미국에서 사니 자주 못 본다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하셨다. 힘든 일이 있어도 절대로 불만과 불평하지 않고 누구라도 품고 감싸며 누구에게나 진심 어린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으시는 외숙모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나도 그렇게 누군가의 좋은 인연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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