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LYWOOD INTREVIEW] 영화 '크림슨 피크' 주인공 3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신작 '크림슨 피크'는 공포영화이자 고딕풍 로맨스물이다. 어두운 과거를 감추고 있는 듯한 음산한 저택의 여주인 루실(제시카 채스테인), 그의 동생 토마스(톰 히들스턴)와 아내 이디스(미아 와시코브스카)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랑·집착·구속·분노 같은 치명적 감정이 영화 전반에 걸쳐 조금씩 펼쳐진다.이 영화의 만듦새를 이루는 축은 두 개다. 하나는 프로덕션 디자인과 의상 등을 통해 델 토로 감독이 구현해 낸 시각적 이미지이고, 다른 하나는 세 주연 배우인 제시카 채스테인·톰 히들스턴·미아 와시코브스카의 연기가 만들어 내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이다.
델 토로 감독은 "이번처럼 배우들의 연기를 연출하는 게 좋았던 적은 없었다. 지금껏 만난 최고의 배우 조합이었다"라고 할 만큼, 셋의 연기 앙상블에 만족감을 표했다. 덕분에 영화에 대한 관객의 기대감과 궁금증은 한층 높아졌다. 영화 공개에 앞서, 지난 7월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만난 세 배우에게 영화 이야기를 들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이경민 기자 [email protected]
제시카 채스테인…"루실은 공허하고 외로운 인물"
-루실 역에 어떻게 접근했나.
"과거에 대한 향수가 강하고, 셔프 가(家)의 저택에 대한 집착이 상당하다고 생각했다. 집이 존재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낄 사람 같았다."
-굉장히 힘든 촬영이었을 것 같다.
"'모스트 바이어런트'촬영 일정과 겹쳐서 뉴욕과 토론토를 오가며 동시에 두 캐릭터를 연기해야 했다. '크림슨 피크' 현장으로 돌아올 때마다 뉴욕식 액센트를 버리고 루실에게 맞는 목소리 톤과 발음을 찾느라 매번 언어 교정 코치(Dialect Coach)와 상당 시간 연습도 해야 했다. 토론토로 돌아오면 조금이라도 빨리 루실 역에 몰입하기 위해 트레일러 내부를 그와 어울릴 법한 분위기로 꾸며놓고, 쉬는 시간에도 키보드로 영화에 등장하는 쇼팽의 음악과 자장가를 연습하며 보냈다."
-무리한 스케줄인데도 루실 역을 꼭 맡고 싶었던 이유가 있다면.
"루실은 그 동안 내가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공허하고 외로운 인물이다. 그 감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압박이 상당했다. 하지만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을 탐험해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마마'에서 제작자로 처음 연을 맺었던 델 토로 감독과 다시 일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의상이 상당히 강렬하다.
"보기엔 근사하지만 입는 게 고통 그 자체인 의상이다. 어디가 가려워도 긁을 수조차 없었다. 매번 감독이나 의상 디자이너와 각 의상이 가진 의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왜 이 의상을 입어야 하는지 설득력 있는 이유를 찾고 싶어서다. 루실의 경우, 한 마리 '곤충' 같은 이미지가 느껴졌다. 그의 드레스는 곤충의 몸을 덮고 있는 껍데기같다고 생각했다. 숨 막히는 코르셋, 답답한 하이 터틀넥, 꽉 조이는 소매, 7인치 굽의 구두까지 모든 게 그를 지탱, 혹은 구속하고 있는 장치였다."
톰 히들스턴…"제인 오스틴 책 보며 배역 연구해"
-다른 배우(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맡았다 하차한 역할이다.
"델 토로 감독이 직접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장 시나리오를 받아 읽어봤는데, 예상을 뛰어 넘는 전개와 공포가 가득해 쉴 새 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됐다. 다층적이고 섬세하게 창조된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고, 인물간 심리 묘사도 신선했다. 연기하기에 아주 재미있는 영화가 될 거란 생각에 주저 없이 출연을 결정했다."
-캐릭터엔 어떻게 접근했나.
"10페이지 분량의 토마스 셔프의 일대기를 델 토로 감독이 직접 준비해 보내줬다. 토마스와 그의 부모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을 비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심지어 별자리까지 적혀 있었다. 캐릭터의 과거와 배경이 완벽히 준비되고 나니 연기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헨리 제임스·제인 오스틴·샬럿 브론테의 문학 작품을 보며 그 시대의 분위기나 당시 사람들의 말투·스타일을 연구하기도 했다."
-공포영화는 첫 도전이다.
"원래 공포영화를 잘 못 본다. 하지만 공포영화엔 분명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늘 흥미로웠다. 배우가 공포스러운 상황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연기할수록 관객의 두려움은 더 커진다고 판단해, 최대한 꾸밈 없이 힘 빼고 아무렇지 않게 연기하려 노력했다."
-델 토로 감독과 작업하며 가장 좋았던 점은.
"열정이다! 지금껏 만나 본 어떤 감독보다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 그 에너지가 모두에게 전염돼 다들 기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연기·세트·조명·의상·헤어에 이르기까지 영화 제작 과정 전반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다, 그 과정 하나 하나를 존중해 주는 탁월한 리더십이 있다. 델 토로 감독의 세트는 모두가 행복한 곳이다."
미아 와시코브스카…"공포 영화는 인간의 본질 건드려"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참고한 영화나 책이 있다면.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하며 델 토로 감독의 주요작을 다시 한 번 훑었다. 그의 연출 스타일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다. 전반적인 느낌은 판이하게 다르지만 스토리의 기본적 특징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해, 그의 작품도 몇 편 다시 봤다. 이유도 모른 채 어딘가에 갇혀 있는 여성의 이야기란 점에서 '로즈메리의 아기'도 참고했다. 델 토로 감독이 도움이 될 거라며 준 헨리 제임스의 소설 '나사의 회전'과 M.W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도 읽었다."
-평소 델 토로 감독의 팬이었나.
"물론이다. 이전까진 한 번도 만나보진 못했지만 늘 존경해 왔다. '파리대왕'을 연상시켰던 '악마의 등뼈'나, 시각적으로 강렬하면서도 감정선을 놓지 않은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는 특히 좋아했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가 대본 속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내는 과정을 지켜보며 매 순간 놀라웠다."
-촬영 전 얼마나 준비하는 편인가.
"철저히 준비하는 걸 좋아하지만, 현장에서의 즉흥적 변화에도 열려 있는 유연한 배우가 되려 한다. 집에서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현장에 와서 동선을 맞추다 보면 상상했던 그림과 전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의상팀이 준비한 드레스를 입고 카메라 앞에 서니, 의상이 장면과 녹아들며 만들어내는 힘과 울림 덕에 완전히 새로운 분위기가 만들어지곤 했다."
-공포 장르만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극히 비현실적인 것 같지만,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우리 사회나 가족, 인간 관계 등의 본질을 건드린다는 점이다. 언젠가 델 토로 감독이 '공포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누구인지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굉장히 의미 있는 통찰이라고 생각한다. 왜 사람들이 공포영화를 좋아하는가에 대한 좋은 설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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