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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의 아이

워싱턴가정상담소 칼럼
강수미 미술치료사

얼마 전 하늘만 쳐다보며 눈이 오기만을 바라는 아이들에게 야속하게도 비가 내린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비를 좋아하던 필자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온갖 낭만과 행복감에 취하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행복한 마음 한켠에 쓸쓸함으로 자리잡는 한 아이의 그림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느해 봄 대부분의 학생이 새학기가 시작되어 유치원과 학교를 가야되는 시기에 한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인체 엄마의 손을 잡고 필자에게 찾아왔다. 5세된 여아로 아이의 한쪽 눈썹은 반이 뽑혀 있었다. 아이는 가정의 불화로 인해 부모가 심한 폭언과 폭력적인 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며 성장을 했다. 이로 인해 아이는 심한 공포심과 우울감을 느낄 때 마다 눈썹을 뽑으며 불안증상을 보였고 유치원에 가기를 강하게 거부했다. 필자는 아이에게 미술치료 과정중에 투사적 그림검사인 ‘빗속의 사람 그림 검사(Person in the rain)’를 실시했다.

아이는 가까스로 연필을 잡고 종이 한쪽 구석에서 부터 힘없이 비를 그리기 시작하더니 점차적으로 몰입하며 필압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동안 종이 전체에 비를 그리고 난 후, 천둥 번개까지 치게 하고 “우르르 쾅쾅쾅” 큰 소리를 내며 연필로 종이를 찍어데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매우 작게 표현하고 우산과 우비등의 아무런 장비도 없이 고스란히 비를 맞는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을 통해 아이가 현제 감당하기 힘들정도의 무거운 마음의 상처와 스트레스를 느낄 수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아이가 이토록 힘겨워하는 스트레스와 상처를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마저도 아이에게 비를 막아줄 우산이 되어주지 못하자 아이는 한없이 무기력해져 모든 고통을 고스란히 받기만 한 것이다. 부모와의 상담과 다양한 미술치료 과정을 통해 아이의 심리상태를 진단하고 비에 젖어 마르지 않았던 감정들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점차적으로 아이의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피어나기 시작했고 가지런히 나있는 예쁜 눈썹을 보게되어 벅찬 감동과 보람을 느꼈다. 아이에게는 비를 막아줄 우산이 필요했다. 고스란히 비를 맞기만 했던 빗속의 이 아이에게 부모는 사랑의 우산을 씌어주며 희망의 무지개를 기대할 수 있는 소망도 심어주었다.



비를 맞고 느끼지도 못한체 무기력 해진 상태는 아닌지, 누군가가 비에 흠뻑 젖어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 자신과 주위를 살펴보길 바란다. 온갖 스트레스와 상처로 버무려진 삶에 노출된 우리, 공동체 안에서의 다양한 관계속에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척간의 스트레스의 강도는 우리가 짐작하는것 보다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친구와 가족간의 수다, 대화, 운동, 명상, 독서, 음악 감상, 그림 그리기 등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우산이 되어, 서로 믿었던 장소 또는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수시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피하거나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이해인 시인의 ‘우산이 되어’라는 시 중에서 ‘수 많은 나의 너와 /젖은 손 악수하며 /이 세상 큰 거리를 /한없이 쏘다니리 // 우산을 펴주고 싶어 누구에게나/ 우산이 되리 /모두를 위해’라는 시의 일부가 생각난다. 부모의 이혼과 가정 불화로 상심해 하는 아이들이 마냥 비를 맞고 있지는 않은지, 중독과 마약등의 퇴폐적인 삶의 늪에 빠져 괴로와 하는 청소년은 없는지,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장애인은 없는지, 자식과 이웃에게 외면당하고 홀로 외로움에 지쳐있는 노인은 없는지, 시간이 없다고 친구와 가족의 고민을 들어주지 못했는지…. 이처럼 감당하기 힘들정도의 갖가지 사연으로 비 맞고 있는 이들에게 씌어줄 우산이 부족하진 않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 주위에 사랑의 우산이 필요한 이들에게 비를 피해 줄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나의 너’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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