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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천국보다 낯설은 이스탄불

천국보다 낯설은 이스탄불

이수임(화가·브루클린)

‘스페인?’ ‘아니 터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마다 항상 머릿 속에 먼저 떠오른 그 도시가 바로 이스탄불이었다. 그러나 나는 막상 다른 도시를 선택하곤 했다. 마침내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에 도착해 호텔을 찾아가는 길, 저 멀리 바닷가에 로맨틱한 식당들이 눈에 띄었다.

호텔에서 나와 식당을 찾아 바닷가 쪽으로 꺾어 걸었다. 번화가에 그 많던 상가들이 멀어지며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져 바닷가로 이어졌다. 분비던 관광객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두 방향으로 갈라지는 후미진 골목에 다다랐다.



염원의 도시 이스탄불에 취해서 누군가가 뒤쫓아오는 것을 감지 못했다. 그러나 걸어오며 서너 번을 반복해서 스친 얼굴이 다시 나타났을 때, 비로소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맞닥뜨린 형국에서야 직감했다. 쿠르트족 십 대 서너 명이 나를 점점 좁혀 다가왔을 때는 이미 늦었다. 등 뒤에서 누군가의 숨소리가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가방끈이 낚아 채이며 몸이 뒤로 획 당겨지더니 왼쪽으로 돌며 가방끈을 잡았던 굵고 검은 손이 가방을 움켜쥐자 앞으로 힘차게 당겼다. 반사적으로 나도 가방 끈을 움켜잡았으나 낚아챈 십 대의 힘에 못 이겨 앞으로 쓰러졌다.

놓지 않는 가방끈을 당기느라 남자는 코블 돌 바닥 위에 엎어진 나를 줄이 끊어질 때까지 끌어당겼고 나는 끌려갔다. 한순간 일어난 일인데도 왜 그리 오랫동안 끌려갔다고 기억되는지. 주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나 누구 하나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도 없이 구경만 하고 있었다. 드디어 서로의 힘에 부치어 가방끈은 끊어지고 남자는 가방을 움켜쥐고 엎어진 나를 승리자의 얼굴로 힐끗 뒤 돌아 비웃으며 멀리 사라져갔다.

달아나는 그들을 보며 벌떡 일어서려는데 몸이 생각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나는 골목 한가운데에 망연히 엎어져 있었다. 모여 있던 구경꾼들은 나를 흘금 흘끔 보며 슬슬 흩어져갔다. 흩어져가는 모든 사람이 한통속으로만 여겨져 분노가 끓어올랐다.

충격에서 깨어나니 무릎의 통증이 느껴졌다. 무릎은 찢어져 피가 나고, 몸은 움직일 수 없이 쑤셨다. 다음 날은 몸 전체가 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고 바지가 들어가지 않을 만큼 하체가 부어 있었다. 다리를 굽힐 수도 걸을 수도 없었다.

정월 초 일주일간의 연휴에 들어선 이스탄불은 몹시 추웠다. 길바닥은 집집이 양을 잡고 버린 핏물이 여기저기 흘러내리고 그 피 비릿내가 더욱 나를 어떤 야만성에 진저리치게 했다. 터키를 거쳐 그리스로 가려던 계획도 지지부진했다. 일주일 후 관공서 문이 열려 여권을 만들 때까 지 터키에 갇혀 있어야 했던 것.

호텔 창틀에 베개를 괴고 내려다보니 명절을 세는 이집저집에서는 양을 잡는 등 어수선하고 분주했다. 새 옷을 입은 사람들은 디저트 ‘바클라바’ 상자를 들고 어디론가 바삐 갔다가는 돌아오는 행복한 모습들이었다. 새벽 6시만 되면 온 도시를 울리는 이슬람교의 예불 소리는 내 귀에는 분노의 절규 소리로 들리며 나를 선잠에서 깨우곤 했다.

TV를 틀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니 ‘해신’이란 한국 드라마가 나왔다. 침대에 누워 ‘해신’을 보고 있자니 오래전 파리에서 뉴욕에 여행 온 한 친구가 생각났다. 여행은 안 하고 드라마 ‘다모’를 끝 편까지 보고 떠난다는 그를 보고 그땐 ‘한심한 친구’라며 속으로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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