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게이트 제보자 '딥스로트' 펠트 사망
당시 차기 FBI 국장 후보, 닉슨이 승진 막자 비리 폭로
닉슨의 재선을 위해 중앙수사국(CIA) 요원들이 동원돼 불법 감청을 시도하다 적발된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 역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의 사임을 이끌어 냈으며 이를 보도한 워싱턴포스트(WP)의 밥 우드워드 칼 번스타인 기자는 "탐사보도의 새 장을 열었다"는 극찬을 받았다.
1913년 아이다호주의 트윈 폴스에서 태어난 펠트는 아이다호 대학과 조지워싱턴 대학을 졸업한 뒤 1942년에 FBI 요원이 됐다.
이후 승진을 거듭해 FBI 본부에서 요원 교육과 내부 감사 업무를 담당하게 된 펠트는 1970년 백악관에서 당시 해군장교이던 밥 우드워드와의 만나게 된다. 펠트는 이 자리에서 자신에게 진로 상담을 받길 원하던 우드워드에게 연락처를 남겼다.
1971년 FBI 부국장으로 승진한 펠트는 이듬해인 1972년에 에드거 후버 당시 FBI국장이 사망하고 FBI의 2인자였던 클라이드 톨슨 부국장마저 은퇴하자 자신이 FBI 국장직을 승계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닉슨은 펠트를 거부했다.
불만에 휩싸인 펠트는 그 해 여름 워싱턴포스트의 초년 기자이던 우드워드에게 '워터게이트 사건'을 알리게 된다. 닉슨 당시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CIA 소속 비밀공작단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해 도청장치를 달았다는 내용을 알린 것이다.
제보 내용의 파괴력이 만만치 않은 만큼 펠트와 우드워드는 둘의 만남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우드워드와 함께 워터게이트를 파헤친 번스타인조차 취재원이 누군인지 모를 정도였다.
그의 정체가 밝혀진 것은 지난 2005년이다. 펠트가 "죽을 때까지 취재원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는 우드워드와의 약속을 깨고 '베니티 페어'지와의 인터뷰에서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밝힌 것이다. 그 전까지 그는 오직 '딥 스로트(deep throat 익명의 제보자)'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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