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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은순기자의 밴쿠버 인물풍경 (11)-옐로 나이프 주의원 샌디 리씨

78년 옐로우 나이프로 이주,연속 주의원으로 당선


“커가는 한국 커뮤니티 더 강한 목소리 낼 수 있을 터”
“정치로 다양한 삶을 읽을 수 있어 독특하고 매력적인 일”

자랑스런 한국인

캐나다는 10개의 주(Province)와 3개의 준 주(Territory)로 구성된 광활한 영토의 국가다.
두 개의 준 주는 북서쪽, 거의 북극에 위치한 곳이라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언젠가 친구가 노스웨스트 테리토리(Northwest Territories)의 주도 옐로우 나이프를 다녀온 뒤, 그 쪽으로 여행을 한번 가보라고 권유한 적이 있다.
가는 일정이 다소 힘겹지만 극지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들이 등장하고 삶의 오지에서 느낄 수 있는 이색적인 풍광을 통해 많은 걸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툰드라, 강한 추위, 오로라, 백야 현상, 특이한 지형과 기후 등은 극지에서만 볼 수 있는 요인들이라는 부연 설명도 했다.

노스웨스트 테리토리의 총 인구는 4만 2천명, 그 중 2만 명이 주도인 옐로우 나이프에 모여 산다.
총 19개 행정 구역으로 분류되는데 그 중 레인지 레이크(Range Lake)라 불리는 지역의 주 의원(Member of Legislative Assemble)이 바로 한국계 캐네디언 샌디 리씨다.

1999년 12월 처음 주 의원으로 당선되었고 2003년 11월 또 다시 주 의원으로 재 당선되는 영광을 누렸다.
한국계 캐네디언으로는 처음 있는 일이고 노스웨스트 테리토리에서도 두 번 째 여성 당선자라고 한다.

저 머나먼 극지에서 한국인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샌디 리씨. 그녀의 삶은 대체 얼마나 극적이고 치열했을까.

가장 추운 곳에서 빛나는 정신

샌디 리씨. 그녀의 한국 이름은 이승신이다.
1978년, 중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을 따라 옐로우 나이프로 이주했다.
그녀가 오던 해만 해도 금광촌인 그 곳에 독일계 한국인들이 몇 가족 살았으나 점점 줄어들더니 현재는 한국인이 전무한 실정이다.

“5 년 전만 해도 밴쿠버나 토론토 등지에서 온 한국인들이 파트너로 호텔 사업을 하기도 하더니 현재는 전무합니다.
옐로우 나이프는 한때 금광촌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문닫고 대신 다이아몬드광이 들어섰습니다.
그런 연유로 탐사 비즈니스(Mining Exploration Business)가 발달돼 있는 편입니다.
탐사를 위해 비행기를 빌린다거나 시에서 필요한 허가를 대행해 주는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지요.
이곳에서 나는 다이아몬드로 현재 캐나다는 세계 3위의 다이아몬드 생산국에 듭니다.
그런가 하면 알래스카에서 가스가 개발될 경우 이곳에 운송을 위한 파이프라인이 개설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일에 투자하는 사업들도 발달돼 있지요.”
그런가 하면 연중 오로라 관광을 위해 일본인들이 2 만명 가까이 몰려 들기도 한다.
그리 보면 옐로우 나이프는 작은 곳이지만 흥미진진하고 성장 가능성이 많은 매력적인 지역이라 할 수 있다.
교통편은 밴쿠버에서 직항편은 없고 에드먼튼에서 가는 비행기편이 있다.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오타와에서(Carleton University)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지요. 그리고 옐로우 나이프로 돌아와 연구원 겸 장관보좌관으로 5년 남짓 주 의회를 위해 일했구요. 일을 하다 보니 법학을 더 공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시 핼리팩스에 있는 댈하우시 대학(Dalhousie University)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변호사로 한동안 일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활동적이고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좋아해서 자연스레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지요.”
1999년 처음 주 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 남자 4명에 경쟁자로 나왔다.
20년 가까이 그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많은 주민들을 알고 있긴 했지만 초선 출마에 여성이었고 그것도 한국계 캐네디언이라는 불리함을 안고 있었다.
영하 30도 되는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가가호호 3번을 돌며 자신에 대해 설명했다.
결과는 당선이었고 득표율 47%였다.

“불리한 점이 많았음에도 첫 출마에 당선되었을 때 감개 무량하더군요. 이곳 주민수가 적긴 하지만 대부분이 프로페셔널들이고 미들 클래스 층이라는 점이 제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 같아요. 그들에게는 주의원이 꼭 백인이어야 한다는 편견도 덜 했고 여성이라는 점, 한국계라는 사실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변호사가 많지 않은 이곳에서 제가 변호사라는 점도 높이 평가 받은 것 같구요.”

내일 또 내일

4년 임기가 끝나고 다시 있은 선거에서 득표율 87%로 재 당선된 샌디 리씨. 하는 일이 재미있느냐고 묻자 ‘good day’라고 경쾌하게 답변한다.
그녀는 ‘정치란 매우 독특한(unique thing) 일’이라고 생각하며 ‘각계각층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주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학교, 병원 등지를 방문하며 문제점 등을 진단하며 인생을 배우는 일’이라 믿는다.
‘정치를 위한 학교는 없으나 인생 자체가 정치’라고
생각한다.

“한인사회도 많이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80년대에 오타와에서 공부할 때만도 그로서리에 숙주나물이나 양파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당연한 품목이 되었더군요. 그만큼 아시아인들의 위상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들은 열심히 일하고 우수한 민족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캐나다에서 성공한 한국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우수한 2세들이 주류로 진출하면서 몇 년 후면 더욱 강한 목소리를 내게 될 거라 믿습니다.
특히 C3(Korean Canadian Coactive Society)와 같이 우수하고 열성적인 1.5세, 2세들의 모임이 활성화 되면 한인사회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올 1월에는 캐나다 담당 장관과 함께 광우병 파동 때문에 문제 해결 차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1993년 대전 엑스포 때도 참석한 바 있고 1996년 법대 2학년 때는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해 보고 싶어 안양에 있는 전자회사에서 4개월간 일한 경험도 있다.

“기회가 닿을 때 마다 한국엘 나가는데 짧은 시간 한국에 다녀오고 나면 마음이 아프다 못해 슬퍼요. 기회가 닿으면 그곳에서 일 이년 정도 머물며 생활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그 동안 쌓인 그리움과 향수가 어느 정도 씻길 것 같아서요. 제 고향은 서울 세검정인데 제가 살던 당시에는 주위에 밭이나 과수원도 있었고 여전히 전원적인 풍경을 간직하고 있었지요. 현재 서울은 국제 도시로서 너무 비대해져 고향을 멋을 찾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전 마산,부산, 대전 등지의 지방도시를 좋아하지요. 제가 살던 고향 모습을 연상시키거든요.”
오는 10월 16일 C3후원 연설을 위해 밴쿠버를 방문할 예정인 샌디 리. 그녀는 이번에 자동차 여행을 할 예정이다.
옐로우 나이프에서 밴쿠버까지 장장 3일이 소요되는 긴 여정이지만 운전을 좋아하기도 하고 차창을 스치는 풍경을 보며 많은 걸 생각할 수 있기에 택한 길이다.
보통 사람이 감히 엄두를 내지를 못하는 일을 아주 쉽게 도전하고 또 해 내는 그녀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샌디 리. 첫 한국인 주의원인 그녀의 도정에 언제나 행운이 함께 하길 빈다.

(샌디 리씨 웹사이트 www.sandylee.ca)
(연은순 문화전문기자,문학박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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