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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대서양의 사투…참치낚시 ③

이대영

전 뉴욕한인잡화협회장



[15일자 21면에서 계속]

나는 엄청난 고기의 저항에 힘겹게 리일을 한바퀴씩 돌리고 있는데 “빨리 쉬지말고 감으라”며 선장까지 내려와서 응원을 하는 것이었다. 감다가 쉬면 상어가 뜯어먹는다고 하면서 채근한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고 옆에서는 동료들이 리일을 감느라 신음소리가 들려도 처다볼 겨를도 없다. 한편으로는 고통스러운 시간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흥분되고 스릴에 넘치는 격동의 순간들이 이어진다.



격동! 터질듯한 긴장!



리일을 감는 손바닥이 터질것만 같아서 마지막으로 안간힘을 쏟을 무렵에 드디어 나의 대어(大魚)가 배꽁무니에서 번쩍번쩍 보이도록 다가왔나보다. 선장과 조수의 탄성이 들린다. “금년에 잡아보는 가장 큰 참치”라는 소리가 나의 귀에는 개선장군에 대한 행진곡처럼 들렸고, 나는 신바람이 나서 다시 죽어라고 줄을 당기고 있었다. 참치가 가까이 올수록 고기의 힘이 워낙 세어서 힘겹게 겨우 한바퀴를 감을랴치면 반바퀴 이상이 풀리기를 되풀이 하는 것이었다.

참치가 배에 가까워지면 조수의 역활이 중요하다. 고기가 좌우로 휘젖고 다닐때 낚시줄이 배에 안닿도록 손으로 잡고 따라다니다가 적기에 갈고리로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뿔사, 이 조수가 나의 大魚와 이쪽 저쪽으로 뛰어다니면서 겨루다가 그만 낚시줄이 배모서리에 쏠리는 아차 순간에 줄은 끊어졌고 고기는 낚시바늘과 꽁치 한마리를 문채로 자유의 몸이 되어버렸다.

나는 너무나 실망하였다. 허전하여 맥이 풀렸다. 땀을 닦으면서 다른 동료의 전투를 앉은채로 바라보았다. 조수는 마치 실수를 만회하려는 운동선수처럼 연달아 두마리의 참치를 노련하게 끌어 올렸다. 맨처음에 잡았던 것보다는 훨씬 큰 것들이어서 길이가 1미터쯤 되어 보였고, 무게는 약25Kg쯤 된다고 하였다.

참치는 몸 모양이 보통 물고기들 처럼 납작하지가 않고 원통형이어서 비행선같은 꼴로 보인다. 참치라는 이름은 해방후에 만들어서 불리워지는 말이고 원래 우리말로는 다랑어라고 한다. 영어로 Tuna라 부른다.

이 참치는 보통 40∼50 파운드 짜리가 많이 잡히고 수 백 파운드 되는 대어들도 이따금씩 잡힌다고 한다. 일본사람들이 워낙 횟감으로 선호하기 때문에 미국근해에서 잡힌 큰놈들은 다음날 아침에 동경의 어시장에서 팔린다고 하며, 미국에서 사가는 값이 한마리에 수 천 달러를 홋가한다고 한다. 일본말로는 마구로인데 참치의 뱃살이 더 맛이 좋다고 하여 토로라는 이름으로 따로 불리기도 한다.



즉석 회, 그 맛이란…



동서양을 막론하고 놓친 고기는 원래 엄청나게 큰 법이어서, 선장의 말로는 그날 우리가 잡은 참치들이 금년씨즌에 Sports Fishing으로 잡히는 것들 중에서는 큰 축에 들었지만 놓친놈은 정말로 컸다는 것이었다. 그런 말이 나에게는 그저 씁쓸할 따름이었다.

참치낚시는 주법에 따라서 1인당 3마리로 제한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일행이 모두 세마리씩을 잡은 후에는 선장의 제의에 따라서 King Mackerel(삼치) 낚시를 하기로 하였다. 낚시의 장비를 모두 바꾸는 것이었다. 우선 낚시대가 필요없고 배의 가장자리에 리일을 설치하고 줄만 던저넣으면 되었다.

생선 중에서 가장 머리가 나쁜 축에 드는 삼치는 아무거나 보이는대로 문다고 한다. 모형 물고기를 반짝이도록 단장을 하여 바늘 옆에 매달아 놓고 있으면 그것을 좇다가 잡히는 것이었다. 삼치의 크기는 참치만큼이나 길지만 날씬하게 생겨서 낚시줄을 당기는 힘은 10분의 1쯤이나 될가 싶게 줄을 감는대로 잘 딸려나온다.

맨처음에 잡은 참치 한마리와 삼치 한마리를 회를 떠 놓으니 그 풍성한 양과 신선한 빛갈이 먹음직스럽다. 날선 칼로 잘 썰어놓은 횟점들이 초록과 파랑과 은빛이 섞인 색깔로 반짝이며 와사비와 초고추장을 기다린다. 아무리 일류 일식집이라 하더라도 마구로를 이런 선도와 맛을 유지할 수는 없다. 선장은 회를 못먹는다고 일찌감치 신고를 하여 제외되었지만 조수는 와사비와 초고추장을 교대로 찍어 먹어보고는 다 좋다고 엄지를 치켜세운다.상을 차려 놓고 보니 일행이 둘러앉아 팔만 뻗치면 닿을 자리에 얼음에 채운 소다는 물론이고 맥주가 있고 와인이 있고, 스시를 즐기는 미국인 동료 때문에 스시용 밥까지도 준비되어 있으니 이거야 말로 더 없는 식도락이었다.

원래 4시반에 부두에 돌아오도록 예정이 되어 있었지만 일찌감치 만선( )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앞당겨서 돌아가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이미 거나하게 취기가 올라서 낚시는 더 할 수도 없었으니까.



라이트 형제 기념공원



부두에는 우리 배를 기다리며 환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매일매일 낚시현황을 보도하는 기자와 사진사가 있었고, 일부 관광객들과, 잡은 고기를 처리할 상업서비스업자들이 우리를 기다리며 배가 닿기도 전에 손을 흔들어 마중하였다.

호텔에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형제의 유적지를 지나게 되었는데, 높이 세워진 기념탑이 멀리서도 잘 보인다. 이곳은, Ohio주 출신의 라이트형제는 비행실험지를 물색하다가 이 섬의 조그마한 평원에 와서 바람과 낮은 언덕을 이용하여 실험을 하였던 곳이다. 이곳에서 최초로 동력비행기의 조종실험을 성공시켰기 때문에 지금은 이곳을 국립 라이트기념공원으로 지정하여 그들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노스 캐롤라이나주가 라이트 형제를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는지는, 뉴욕주는 별칭을 ‘엠파이어 스테이트’라 하듯, 노스 캐롤라이나는 별칭을 아예‘First in Flight’라 하여 자동차 번호판에까지 이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잘 알 수 있다.

대서양에서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이기 때문에 고기가 많이 모인다는 이 지역에 참치가 몰리는 시기는 일년에 두차례로 4∼5월과 8∼9월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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